이 게임이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비교한다면 오산?
이라고 해봐야 혼자서 겠지 ㅋㅋㅋ
에버퀘스트와 울티마 온라인은 거의 중고교 시절엔 이 계열에서는 쌍두마차였다.
머 사실 울온이 아니더라도 넥슨의 3종 세트(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 한 가지는 기억이;;;)와
다른 몇 게임이 있었지만 이 게임을 시작할 고딩때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게임이 다른 게임과 틀리게 스킬별 레벨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기에...
캐릭별 레벨체제를 안고 있었던 타사 온라인 RPG에 비해서는 특이했다.
잠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걸어온 길을 보면...
Shattered Legacy
파괴된 유산
울티마 온라인. MMORPG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게이머가 이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간첩이다. 1994년 울티마 8의 실패를 딛고 리차드 게리엇과 스타 롱이 생각해 낸 것은 그 당시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한 멀티플레이 기능을 이용하여, 브리타니아라는 대륙 안에서 수십, 수백명의 게이머가 게임을 해 나가는 것이었다. 울티마 9의 제작을 엄청나게 늦추고 결과적으로 울티마 9를 졸작으로 만든 주범이기도 한 울티마 온라인은 이번에는 MMORPG의 역사를 써 나가기 시작한다.
당시 그래픽을 가미한 온라인 롤플레잉은, 시에라사의 더 렐름(The Realm)이 베타 버전을 내놓고 있었고, 3DO사의 메리디안 59가 있었다. 더 렐름은 베타 버전으로 끝나고 말았고, 메리디안 59는 정식 서비스까지 들어갔지만 곧 서비스가 중지되고 말았다. (이들 게임이 발표된 것은 국내에서 넥슨의 "바람의 나라"가 발표된 것과 시기가 완전히 동일한데, 바람의 나라는 국내 MMORPG의 역사를 착실히 진행시켜 나간 것에 비하면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실패를 딛고 뛰어든 사람들이 바로 리차드 게리엇과 스타 롱이었다. 울티마 9를 제작중이었던 이들은 온라인 게임의 가능성을 내다보았고, 울티마 5 수준의 그래픽으로 돌아가는 5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 가능한 프로토타입 MMORPG를 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울티마 온라인의 전신이었다. 당시 모회사였던 EA의 자금지원을 받아 울티마 온라인은 제작이 진행되었다. (결국 울티마 9의 제작은 중지되고 말았다)
1996년 많은 게이머들의 기대 속에 클로즈 베타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울티마 온라인은 국내 게임과는 달리 오픈베타를 진행하지 않았었다) 초기에는 울티마 7,8에서 약간 더 발전된 그래픽 구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적으로 그래픽적인 발전이 시작되었고, 1997년 9월 27일 많은 게이머들의 기대 속에 울티마 온라인의 상용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흔히 리니지나 디아블로의 액션성이 많은 온라인 머드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은 울티마 온라인이 무슨 재미가 있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울티마 온라인이 그토록 외국에서 주목을 받고, 지금도 주목을 받는 이유는 게임의 자유도 때문이다. 17인치 모니터로 미식축구장을 다 덮을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브리타니아 대륙(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수준이었다), 스킬 조합으로 자신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직업, 단순히 전투, 사냥, 돈벌이, 아이템 수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브리타니아 대륙의 시민이 되어 살아나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방식... 지금까지 나온 어떤 MMORPG보다도 방대하고 자유도가 높았다.
초기에는 한국에 샤드(서버)가 없었고, 패키지도 국내 출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외국 온라인 게임들은 패키지를 사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에서 울티마 온라인을 하고 싶어하는 수많은 게이머들은 인터넷을 뒤져서 그 당시 60~65달러 하던 패키지를 구했다. 때맞춰 경제를 홀라당 말아먹은 어떤 파란 기와집 아저씨의 만행(?)으로 환율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패키지 하나 주문하는데 운송료 포함 10만원이 넘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게임 타임도 구하기 힘들어서 신용카드 쟁탈전(?)도 치열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레이크 슈페리어 샤드에는 울티마 온라인 최초의 한국인 길드 Heart Of Tiger가 만들어졌다. 이때를 시점으로 하여 비교적 한국하고 가까운 미국 서부지역에 새로운 서버가 대거 등장했고, 이들 서버의 속도는 다른 서버보다 속도가 좋은 편이었다. 따라서 초기에 울티마 온라인 한국인 유저들은 레이크 슈페리어, 바자, 나파 밸리, 소노마 등에 둥지를 틀고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때의 분위기는 한국인끼리 뭉치자라는 분위기였고, 각 서버에 한국인 길드가 한두개씩 생기고 절대 한국인끼리는 PK나 잡질을 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패턴은 1년 후 서서히 바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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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tory Of MMORPG
The Second Age
두 번째 시대
발매 1년만인 1998년 10월에 등장한 울티마 온라인의 첫 번째 확장팩 '두 번째 시대(Second Age)'는 기존 대륙의 4분의 1 정도 되는 새로운 장소를 제공했다. 테라탄과 오피디언이라는 몬스터를 필두로 여러 가지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했고, 기존의 대륙보다 난이도가 더욱 더 높아졌다. 이 당시 게이머들의 관심사 중 하나가 집자리였는데, 울티마 온라인이 1년이 다 되어 가면서 집을 장만할 정도의 돈을 모은 부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당연히 집자리 쟁탈전이 슬슬 가속화될 때였는데, 이 첫번째 확장팩에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너무나 굴곡이 많은 잊혀진 대륙이라서 집자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uo.cfg파일로 편집해서 써야만 사용할 수 있었던 제한된 옵션이 확장된 옵션창을 이용해서 간단히 바꿀 수 있었고, 채팅 기능을 이때 자동으로 내장하게 되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기능이지만.) 그리고 이때 유니코드를 이용한 다국어 지원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한글은 이때 누락이 되어서 모아쓰기가 안되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이 이것은 어떤 분이 재빨리 한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패치를 제공되어서 해결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인 게이머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한글 대화가 가능해지고, 울티마 온라인의 유통권을 가진 EA의 한국 지사(EA Korea)가 들어오면서 울티마 온라인의 국내 유통이 시작된 것이다. 국내에 처음 들어온 패키지는 울티마 온라인 : 세컨드 에이지 합본의 북미판이었고, EA Korea는 7만원의 가격에 직수입해서 판매했다. 이후 매뉴얼을 한글화한 라이센스판을 내놓으면서 3만 5천원으로 가격을 내렸다.
그리고 1999년 7월이 되자 국내 샤드인 아리랑, 12월에는 발해 샤드가 차례로 개장했다. 한국 샤드가 개장되면서 한국인 사이에는 PK 잡질불가라는 불문율은 깨지게 되고, 이렇게 바뀌어버린 울온의 환경에 불만을 가진 국내 게이머들이 PK와 잡질맨들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정말로 높았던 때이기도 하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주택난... 지어놓은 집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심지어는 현금거래까지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현재 국내에서 만연되고 있는 아이템, 계정 현거래의 시작은 울티마 온라인이었고, 그 시작도 국내가 아닌 외국이었다. 경매 사이트 EBay에 울티마 온라인의 집 한 채가 매물로 올라오면서, 온라인상의 게임 아이템을 현실의 돈을 주고 살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가던 때가 이때였다.
오리진은 1캐릭터 1주거, 더 나아가서는 1계정 1샤드 1주거 정책을 계속 펴나갔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주택난에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에는 엄청나게 엽기적인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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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aissance
르네상스
어느날, 미낙스에 의해 브리타니아의 남쪽에 있는 도시 트린싯이 완전히 함락당한다. 트린싯의 출입은 완전히 금지되었고, 바리케이트 안쪽으로 들여다보이는 트린싯은 처참했다. 시체가 널려 있었고, 죽음의 도시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기사의 고향이자 "명예"의 미덕을 숭상하는 트린싯의 함락은 숨어 있던 영웅, 성기사 듀프레를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했고, 듀프레의 지도하에 몇백명의 전사와 마법사가 무기를 갖춰들고 트린싯 탈환작전에 나섰다. 그리하여 트린싯은 브리타니아의 시민들 손에 의해 되돌려졌지만 브리타니아에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어둠의 시대(The Second Age Of Darkness),
여마법사의 복수(Revenge Of Enchantness)가 시작된 것이었다.
- 1999년 겨울, 트린싯 함락/탈환 이벤트 내용 -
2000년 3월, 두 번째 확장팩 르네상스의 등장. 굳이 새로운 패키지를 구입하지 않아도 패치로 모든 것이 제공되었다. 말 그대로 브리타니아가 두 배로 확장된 것인데, 르네상스 패치가 시작되고 나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각 샤드에서 집짓기 정책이 시작되었다. 이때의 경쟁은 정말로 눈물났고, 필자도 성을 실패하고 나서 타워에 만족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당파 시스템의 등장으로 대규모 전투 개념이 들어간 것이었다. 리니지의 공성전을 연상시키게 하는 이 당파전은 이미 출시된지 2년 반이 넘어가고 있는 울티마 온라인의 게임 수명을 연장해주기에 충분했다.
가장 욕을 먹은 패치는 바로 트라멜 대륙의 등장이었는데, 트라멜 대륙은 PK가 전혀 불가능한 대륙이었다. 이것은 무분별한 PK가 각종 사회문제화되던 때에 등장한 패치였고, 오히려 이것이 울티마 온라인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요소가 된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쌍수를 들고 환영하던 게이머도 많았기 때문에 게이머들간에 꽤 의견이 분분했었다.
일단 르네상스 패치는 패치가 시작되기 전 트린싯 함락 이벤트 등을 통해서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 주었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 파일에 의한 대륙 추가가 아닌, 기존의 맵을 이용한 복사식 추가였기 때문에 게임 흥미면에서는 떨어지는 편이었다. 거기다가 추가된 몬스터는 없음. 결국에는 추가 패치를 통해 몇 가지 몬스터가 새로 선보였지만 첫 번째 확장팩보다는 떨어지는 확장팩이었다. 또한 게임 시스템이 너무 달라졌다는 점 때문에 올드 게이머들이 게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결국 르네상스는 올드 게이머들이 게임을 대거 이탈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되고, 급기야는 리차드 게리엇도 EA사를 떠나게 된다. 이후 오리진은 명맥을 유지하면서 몇 가지 확장팩을 더 내놓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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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 Dawn
세 번째 새벽
2001년 8월. 일쉐나라고 불리는 새로운 대륙이 연결되면서, 울티마 온라인에는 대변혁이 가해진다. 그 당시 게임의 대세는 2D에서 3D로 넘어가고 있었고, 당시 계획중이었던 울티마 온라인 2의 제작이 취소되는 사태가 일어난다. 울티마 온라인의 그래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뒤떨어져 보이게 되고... 이런 배경에서 오리진이 택한 것은 기존 울티마 온라인의 3D화였다.
완전한 3D는 아닌 2.5D의 형태였다. 캐릭터와 몬스터는 완전히 3D로 처리되었지만, 그밖의 것은 2D로 처리되었다. 캐릭터가 3D가 됨에 따라서 페이퍼돌이 멋있어짐과 동시에 보다 다양한 동작이 가능해지게 되었고, 총 30여가지의 캐릭터 동작을 3D에서는 지원했다. 또한 3D에서는 인터페이스가 좀더 편해지고 자유로워지는 등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단점이라면 클라이언트 자체가 느리다는 거였다. 당파전이나 PK가 허용되는 펠루카 지역에서 이러한 클라이언트의 속도 문제는 크나큰 약점으로 작용했고, 결국 세번째 새벽 패키지는 기존 2D 클라이언트도 제공을 하게 되었다. (이후 울티마 온라인의 업데이트는 2D와 3D 클라이언트가 공존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한가지 크나큰 단점이라면, 새로운 대륙인 일쉐나는 3D 클라이언트만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3D 클라이언트로 서서히 유저들을 옮기려는 오리진의 계획이었지만, 이 계획은 유저들의 상당한 반발을 사게 된다. 속도문제도 그렇거니와 3D의 이질감이 기존에 게임을 플레이해온 유저들에게는 반발을 산 것이었다.
이러한 반발은 오리진은 받아들였고, 1년 후에 다음 확장팩을 내놓으면서 개선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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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d Blackthorn's Revenge
로드 블랙쏜의 복수
2002년 3월 등장한 확장팩 로드 블랙쏜의 복수는 브리타니아에 또다시 변화를 몰고 온다. 미르 족과 주카 족에 대한 설정은 개발이 중지되었었던 울티마 온라인 2에서 쓰였던 설정으로, 토드 맥팔레인이 참가한 몬스터와 NPC 디자인과 함께 선보였다.
이전 확장팩인 세번째 새벽에서 기획되었던 것과 달리, 울티마 온라인은 2D를 완전히 버리는데 실패했다. 속도가 빠르고 친숙하다는 이유로 유저들은 2D를 선호했고, 이에 로드 블랙쏜의 복수에서는 2D와 3D를 동시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따라서 3D 클라이언트로만 갈 수 있었던 일쉐나 대륙이 2D 클라이언트로도 접속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계 문명을 이룩한 주카족이라는 설정에 따라 추가된 30여종의 몬스터와 NPC는 다분히 기계틱했고, 울티마 온라인의 원래 설정과는 매치되지 않는 듯 했다. 실제로 거부감을 느낀 플레이어들도 꽤 많았다.
7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제작된 확장팩이라서 그런지, 확장팩 출시 당시에 서비스되지 않은 것도 꽤 많았다. 졸속 확장팩이라는 평도 많이 들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EA Korea의 울티마 온라인 홍보가 꽤 적극적이 되었다. 한정판 패키지가 꽤 화려했었는데, 20여페이지의 울온 만화와, 울온의 모든 지역을 수록한 지도책 등이 들어 있었고, 로드 블랙쏜의 피규어까지 주었었다. (피규어 퀄리티는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세번째 샤드 "백두"가 열린 때가 이때였다. 하지만 이미 국내 온라인 시장의 대세는 리니지 쪽으로 흘러가고 있던 때였고, 울티마 온라인의 인기는 갈수록 줄어들어갔다. 게임방과 연계된 EA의 마케팅은 실패하게 되고, 백두 샤드는 얼마 안 가 문을 닫게 되었다. 거기다가 영등위의 삽질은 울티마 온라인에도 미쳤고, 울온에 19금 딱지가 찍히게 된다. (원래 울온은 미국에서 M 등급을 받은 17세 이상 이용가였긴 했지만...) 결국 로드 블랙쏜의 복수는 국내 발매된 한정판 수량 3만 패키지를 전부 소화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1년 후, 또 다시 대변혁을 몰고 온 확장팩이 등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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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ge Of Shadow
암흑의 시대
2003년 2월 등장한 다섯번째 확장팩 "암흑의 시대"는, 브리타니아에 또다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게 된다. 말라스 대륙의 추가와 함께, 드디어 울온에서 시스템적으로 나눠놓은 "직업"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팔라딘과 네크로맨서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가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각종 추가 기술이 생기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거기다 이른바 "디아블로"식 패치라고 불리는 아이템 패치. 이제까지 몇 종류 없던 마법 아이템에 그야말로 다양한 옵션이 붙게 된다. 수치에도 가변성을 두어서, 마치 디아블로의 아이템같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제까지 아이템의 중요도가 낮았던 울티마 온라인이었기에, 이러한 패치는 기존 유저들의 상당한 반발을 샀다. 사냥에서 떨구는 아이템이 만들어지는 아이템보다 가치를 지니게 되면서 울온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생산직"의 빛을 바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땅이 넓어지는 것, 다섯가지 종류의 데미지 계산, 확연하게 바뀐 3D 그래픽 등 여러가지가 새로 생겼지만, 가장 큰 변화는 "집"이었다. 이제까지 고정된 형태로 제공되던 집을 자기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 집짓기 시스템은 다른 MMORPG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The Sims 정도...?
이러한 배경과 함께 등장한 암흑의 시대는, 초기에는 집짓기 시스템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울티마 온라인의 수명은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고, 2003년 6월, 오리진은 로드 블랙쏜을 던과 브리타니아 시민들이 물리친다는 내용의 이벤트를 진행, 암흑의 시대의 스토리를 종결시킨다. 그리고 2004년 초, EA는 오리진사를 폐쇄시키고, 울티마와 오리진이라는 이름은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지게 된다...